우리가 흔히 이 바닥의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반드시 세 가지 단어의 언어적 정의를 살펴봐야 합니다. 바로 **선(禪), 명상, 그리고 좌선(坐禪)**입니다.
단어를 떠올렸을 때 공통의 개념이 없이 각자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해버리면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중에 도는 설명이 실제 공부의 결과와 맞지 않는다면 그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아주 짧은 글일지라도 몸과 마음을 정갈히 정리한 뒤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으면 단 한 줄도 써 내려갈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이득이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 세상에 나와 여러 사람들 덕분에 더운 밥을 먹고 살았으니, 세상에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가야겠다는 심정, 즉 **’더운 밥값’**은 하고 가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1. 근본 원인: 왜 좌선은 ‘밥값’이 되는 가치가 있는가?
왜 좌선하는 법을 알리는 것이 세상에 받은 은혜를 갚는 일이 될까요?
그것은 좌선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인간의 선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오늘 아침 좋은 마음을 먹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욕심과 사악함이 그 선한 마음을 공격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좋은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지 못해 사라지게 방치한다면, 앞으로의 좋은 일 또한 기약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이란 단순히 앉아있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의 선의를 보호하고 전도된 생각을 바로잡는 자기 방어이자 진보의 과정입니다.
2. 구조적 이해: 비유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
수행의 방법을 논할 때 자주 쓰이는 두 가지 비유가 바로 **’거울’**과 **’흙탕물’**입니다.
거울의 비유: 거울에 때가 끼어 비추지 못해도, 비추는 속성 그 자체는 본래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를 ‘참나의 지각(알아차리는 능력)’에 비유하여 열심히 닦자고 강조합니다.
흙탕물의 비유: 가만히 두면 흙은 아래로 가라앉고 물은 맑아집니다. 조용히 멈춰 있는 ‘정(靜)’의 상태를 강조할 때 쓰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비유의 본질을 살피지 않고 “비출 것도 없고 거울도 없다”는 식의 뻘소리를 하는 것은 비유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조 홍인 대사와 육조 혜능 대사의 선문답은 그 경계가 일반 대화와 다릅니다.
비유를 한 번 더 틀어버려 본래의 뜻을 흐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흙탕물 아래의 흙을 업(業)으로 치부하며 국자로 퍼내자는 식의 해석 역시 비유의 본래 의도를 모르는 소치입니다.
3. 단어의 정의: 선(禪)과 명상의 본질
선(禪), 마음을 가다듬고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
네이버 사전에서는 선을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불교 수행법”이라 정의합니다.
마음을 가다듬음: 옷매무새를 바르게 펴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의 구겨지고 패인 상처를 치료하는 역할도 합니다. 가장 기초이자 핵심입니다.
정신 통일: 마음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마음의 본래 기능들이 살아납니다. 이는 ‘아공(我空)’의 영역까지는 글로 설명이 가능하나, ‘법공(法空)’의 영역은 오직 경험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경지: 체험이 없으면 가치관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깨달음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전도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제법무아, 제행무상 일체개고 라는 보편적 전제에 동의를 해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합니다. 불교란 그런 것입니다. 스스로 세뇌된 선택적 사고를 풀어내는 것도 공부의 한 경지입니다.
명상(Meditation), 오온(五蘊)으로부터의 초월
명상은 마음을 왜곡 없는 순수한 상태로 되돌리는 ‘초월(Transcendence)’을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이를 오온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고통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그 사이의 모든 감정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퀴즈 오온취라고 해서 취는 집착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취 즉 집착은 오온일까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의료용이나 교정용으로 명상을 가르치는 이들 중, 배우러 온 사람을 ‘하자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은 멀쩡하다고 착각하며 명상의 본질도 모른 채 가르치는 것이죠.
의사면허나 대학 졸업장을 내세우며 동진출가 하여 수십 년을 정진한 이들보다 더 큰소리치는 세태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스스로 지혜로워지지 못하면 운명은 필연적으로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4. 구체적인 좌선법의 예 : 주인을 찾는 ‘모른다’의 기술
좌선에 대해 사전은 “가부좌를 틀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라 합니다.
이는 ‘손님(생각)’이 떠나고 남은 ‘주인’을 찾는 과정입니다.
가부좌 논쟁에 대하여
결가부좌를 고집하며 싸우는 이들이 있지만, 저는 반가부좌를 합니다.
그 자세가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반가부좌라고 해서 공부의 깊이가 얕아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몇 달 동안 잠을 안 자고 공부했고, 방바닥의 장판이 몇 번이나 해질 정도로 정진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압니다.
의자에 앉아서도, 서서도(입선), 누워서도(와선),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선은 가능합니다.
본질적으로 선은 자세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널리 선호하는 자세는 있습니다.
구체적인 수행 방법
간단하고 쉽게 말하면
호흡법: 단정히 앉아 코로만 숨을 쉽니다. 들이마실 때 배가 나오고 내쉴 때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복식호흡을 합니다. 이는 에너지를 얻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모른다(Don’t Know): 호흡이 익숙해지면 아랫배까지 내려가면 분기점이 나옵니다. 호흡 하나에 전심전력을 할 수도 있고 다른방식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의식을 ‘모니터’라고 상상하십시오. 모니터에 어떤 창(생각)이 뜨든 무조건 “모른다” 하고 창을 끄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모른다” 하고 끕니다.
다리가 아프면? “모른다” 하고 끕니다.
깨어있음의 체감: 아주 쓴 커피를 마셨을 때 순간적으로 정신이 또렷해지는 그 느낌, 그것이 바로 깨어있음입니다.
5. 결론: 수행의 끝에서 얻게 되는 것들
이렇게 깨어서 내면을 살피면 **회광반조(回光返照)**가 되고, 외부를 살피면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됩니다. 배우는 사람은 이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그 자체가 학습 즉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됩니다.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이런 걸 하면 뭐가 좋으냐?” 오늘 저는 그 질문에 즉답을 드리겠습니다.
최종적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를 알게 됩니다. 참고로 저는 이런 소리를 하라고 태어났겠죠. 1. 삶의 명확성: 어떤 일을 하든 혼돈스럽지 않습니다. 2. 인생의 해결사: 깊은 사고의 힘으로 세속의 문제를 해결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3. 내면의 평화: 돈 들이지 않고 건강해지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평화를 얻게 됩니다. 4. 덤으로 얻는 보너스: 피부가 12년 정도는 젊어질 것이라 확신하며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의 이 작은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나침판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살면서 제가 먹은 더운 밥값을 조금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