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착선사(아상가)의 초기 구도와 소승의 공관 체득
무착선사는 그러니까 아상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공의 교리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자살하려고 고민했을 때, 동방, 비데하국(현재의 비하르주 북부)의 핀돌라(Pindola) 아라한을 만나서 겨우 소승의 공관(空觀)도 체득했다고 합니다.
소승의 공관이라고 하는데 공관에도 소승과 대승이 따로 있는지는 견문이 짧아서 잘모르겠습니다.
다만 공은 무가 아니고 비어있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이 공을 설명할 때 제가 하는 이야기는 신의 한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가장 바탕이 되는 의식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가 반야심경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수행으로 알아지는 것이고 이 모든 수행이 깨어있음을 동반하는 것이며 깨어있고 고요해지면 의식은 자연히 더 아래의 근원의식과 장벽이 사라집니다.
당연히 깨어있어야 그 경험을 기억하고 관찰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 깨어있음이 왜 필요한 것인가 어떤 측면에서 말하고 있는가 만 봐도 그 사람이 공부를 하는 사람인지 그저 무협지처럼 세계관을 즐기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항상 말하지만 이런거 알려주면 다 안하면서 했다고 사기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지배하려고 들기 때문입니다.
부파불교의 폐쇄성과 대승불교의 역사적 부상
어쨌거나 이에 만족할 수 없는 아상가는 인도 중부의 아요딘야(현, 아우드)에 가서 대승불교의 수행의 하나인 유가행에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도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사람들이 다투는 상황에서 무조건 배우러 갔다는 말도 사실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배워도 일단 자신이 “이거야 이게 다야?” 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공부하는 이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장사하는 사람은 자꾸 적당한 답을 만들어서 질문을 사라지게 하죠.
아래에서 소승불교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근데 왜 소승불교라 할까요?
그것은 개인의 해탈을 목표로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지배계급의 후원 속에서 폐쇄성을 띄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의 입멸후 결집의 시기를 거쳐 부파불교시대에 대승불교는 왕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시기에는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소승불교가 점점 더 폐쇄성을 띄고 이 폐쇄성을 가졌다는 의미는 지배층의 후원에만 의지하면서 민중들과 유리상태가 되고 결국 민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지배층이 대승불교를 선택하면서 비로소 대승불교가 주류가 됩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소승불교라는 의미가 폄하의 의미인지도 부정확한 것이 스스로 먹고 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공동체에 대한 마땅히 해야할 바를 잊고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지배층에 기대었다면 소승이란 말도 정말 분에 넘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륵보살과의 만남과 유식(唯識)사상의 확립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거기에서 마이트레야(미륵)에게서 대승의 공(空)사상을 공부하고, 대승불교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미륵이 실존인물인지 아니면 정신계의 어떤 작용인지 동학의 강화지교 같은지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없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형태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부를 한 사람만 가능합니다.
가령 레이키를 공부하는 사람은 실제로 정신계의 어떤 존재로부터 별도의 상징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학의 강령이나 강화지교같은 것도 경험을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서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영업의 목적이나 사교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임사체험시에 지복의 감정을 느끼고 삶의 가치관이 크게 변하는 사람도 있죠.
그래서 신앙은 선물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예외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단기간에는 보통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이트레야가 직접 유가사지론을 설교하도록 요청하고, 아상가는 해탈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유식(唯識)사상 유포의 단서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마아트레야에게서 일광삼매를 배웠는데, 대승의 교의를 용이하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처럼 약간의 소양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참 공부가 되신 분들은 기억력의 비약적인 상승이 오는 단계가 있죠.
그리고 저도 사실 이런 정도는 아니지만 실생활에서 기억력이 많이좋아졌습니다.
수행자의 자세와 대승비불설에 대한 비판적 고찰
문제는 나같은 경우는 그 단계가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게 장사가 되면 내가 부족하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상대를 깍아내리게 됩니다.
그러니 되도록 이런 일로 돈벌지 말고 능력이 있다면 자신을 먼저 증명하고 그 후에 돈에 연연하지 말고 법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말년에는 대승을 비방하는 동생 바스반두를 아요디야에 불러서 위대한 대승불교자로 키웠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자기가 죽어도 좋으니 대승불교의 책을 한번이라도 검토해달라고 사정했었고 바스반두를 직접적으로 설득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왜 맞느냐? 입니다.
저는 석가모니불을 실존인물인 석가모니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신격화 이전의 석가모니는 대부분의 역사시대에 있었던 위대한 영혼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라는 지금의 뜻으로 불렸고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사람들의 독특한 종교문화 속에서 이 분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결국 이 분이 시바보다 비슈누 브라흐마보다 더 훌륭하다라는 라는 스토리텔링이 있게 됩니다.
이게 이해가 안간다는 분들이 있는데 이해관계가 달라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제외하면 간단한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저의 어머니가 치질수술을 받으시느라 잠시 입원하신 적이 있었는데 이웃 병상의 동년배 어머니가 전도를 이런 말로 하시더라구요.
“어떻든 믿을거면 큰 신을 믿으라..”
여기서 큰 신은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현대 즉 바로 지금도 이래요.
그런데 이해가 안간다고 트집잡는거는 사실 염불보다는 잿밥입니다.
거기다 돈바치지 말고 그 돈 자기달라는 것이죠.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대승비불설이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기존 소승 불교가 이미 인도에서 망테크를 탄 이유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불교가 아니라 성학이든 지구상의 어떤 정신적인 가르침이던 그것은 인간에게 생명에게 내재된 결에 대한 것입니다.
스토리는 그 결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손가락과 달의 관계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지혜와 자비의 구현: 협시보살과 유식의 경지
그리고 그렇게 석가모니 선생님은 지구법계의 주인이 되셨죠.
석가모니 부처님의 협시보살은 문수와 보현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혜와 그 실천을 말합니다.
그런데 보현은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연명보살이라고 불립니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면 그 대상이 살기를 바라고 어떤 대상이 미우면 그 대상이 죽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보현은 사랑의 보살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표출이 보현보살의 십대 행원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종파가 서방정토로의 회향이 있게 되는데 극락의 교주는 아미타 부처님이고 협시보살을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입니다.
역시 지혜와 대자대비 즉 사랑을 대표합니다.
여기서 지혜란 말은 언어적 의미가 지금의 지혜 wisdom이란 범위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근원에서 연원을 모르고 알아차리고 있는 지각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보살이 협시보살이 되는 것이고 그 지각이 최초의 나를 자각했을 때는 둘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이고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니 사랑을 대표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점점 표층으로 나온 의식은너와 나가 분명히 갈려서 손바닥과 손등이 다른 것 같은 간극이 있게 되고 따라서 보살은 비원을 갖게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알고 설명할 수 있으므로 무착선사는 동생 바스반두에게 봐달라고 사정한 것입니다.
사실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착선사의 주요 저서
주저서로는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20권, 섭대승론(攝大승論) 3권,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7권, 미륵 보살의 말을 적은 것으로 전해지는 유가사지론 100권, 대승장엄론 13권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