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선사 인식체계 니까야 보다 아함부 산스크리트어

무착 선사의 동생인 세친 선사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진행하겠습니다.

5세기경의 인도의 불교학자입니다. 산스크리트명 바수반두(Vasubanhu)의 역어로 천친(天親)이라고도 합니다.

바수반두법 사전에 의하면 푸르샤프라(현, 페샤바르시)에서 브라만의 제2자로서 태어나, 출가해서 소승의 설일체유부의 승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그 지역의 주류가 설일체유부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모태신앙의 단점이 바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장점은 뭘까요? 제가 생각할 때의 장점은 문화적인 익숙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식 체계와 잠재의식의 저항

마음의 힘이 실제로 발휘될려면 그 사람의 인식의 체계를 잠재의식이 저항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저항하지 않는다고 뭐든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연구는 잘이루어지지 않아서 무엇이 가능한지 아닌지 희유한 사례는 무엇이였으며 일반적으로 가능한 수준은 어떤 정도인지도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도 직관과 경험에 의존해 말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조던 피터슨의 논쟁처럼 격렬했던 고대 인도의 ‘논파’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요디야에서 스승인 부다미르타가 삼키아파의 외도에 논파되었기 때문에, 『70진실론』을 만들어서 삼키아파의 교의를 논파하고, 그로써 비크라마디티야왕에게 상금을 받고, 그 금으로 아요디야에 세 개의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논파하다는 말은 남의 이론과 학설을 깨뜨림이란 뜻이죠.

그냥 말싸움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를 보시면 조던 페터슨과 여성 앵커의 대화가 있죠.

한참 격렬하게 이야기하다가 여성 앵커의 말문이 막힙니다. 과거에 그런 상황을 왕이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이죠.

이런 사례의 직접적인 경전은 미란다왕문경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비달마구사론』의 탄생: 시(詩)로 외운 논증의 정수

아무튼 그는 유부(有部)의 근본성전 『대비바사론』을 강의하고, 매일 그날의 강의를 시의 형태로 요약했다고 합니다.

불교에 대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1차 경전 결집에서 그 내용을 외웠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보통은 이런 시형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시형태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논증을 외운 것이고 상세한 것은 스승의 가르침과 자기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고 풀어서 말해주는 것이 보통이였을거라고 추측합니다.

이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결과, 600개로 된 『구사론송』이 생기고, 나아가서 그 자신의 해설이 붙은 『아비달마구사론』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후자는 유부의 입장에 입각하며, 부분적으로는 〈경량부〉의 입장에서 유부에 비판을 가한 것이므로, 카시미르의 유부교도들은 불만을 품었다고 합니다.

바스반두는 그러니까 세친이죠.

왕비나 황태자의 귀의를 받고, 외도인 외가라론(畏伽羅論)을 논파해서 상금을 받고, 푸르샤프라, 카시미르, 아요디야에 각 일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카슈미르의 지리적 배경과 불교사의 진실

카시미르 라는 지역의 이름이 귀에 익어서 살펴봤는데요. 인도 북서부에서 파키스탄 북동부에 이르는 지방이라고 합니다. 인도 · 파키스탄, 인도 · 중국 사이의 분쟁지이고요 .

중심 도시는 인도의 스리나가르입니다.

옛날에는 한 1980~90년대만 해도 오교판시같은 이야기가 검증없이 나오는 시기였습니다.

오교판시는 대표적인 가짜 이야기인데 그 당시만 해도 불교인이 불교의 실제 역사를 잘모르던 시절이였습니다.

물론 오교판시의 상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유와 사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기간은 불기의 대부분 즉 1990년대 이전의 거의 대부분의 시대였습니다.


현각 스님의 일침과 ‘초기불교’ 마케팅의 실체

예전에 현각스님이 하신 말씀 중에 어느 절에 갔더니 거기 스님이 현각스님은 외국인이니까 한자를 몰라서 견성을 못할거라고 하니까 현각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한자를 몇 개나 알았습니까?

이렇게 반문하셨다고 합니다.

답은 하나도 몰랐다죠.

고대 인도인이지 고대 중국인이 아니니까요.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한글 이전의 시대 대부분이 한자였고 한자를 모르면 우리 조상들이 뭐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공인이 한자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다른 전공도 마찬가지라 철학을 전공하면 대부분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정신문명이라는 것이 몸과 마음과 세계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자를 알고 어원을 모두 파악해야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 기득권을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분들이 있죠.

이러면 옛날 불교가 타락하던 시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역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교가 인도의 정신문명이라는 것입니다.

태국이나 미안마의 정신문명이 아니라는 것이구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초기불교라는 것은 명백한 사기질입니다.

팔리어가 산크리스트어보다 원본에 가깝다는 것도 저는 안믿습니다.

산스크리스트어는 죽은 언어입니다.

따라서 변형이 없습니다.

실제로 쓰여졌던 언어보다 정확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니까야 라고 부르기 보다는 아함부 경전이라고 부릅니다.

  • 세친(Vasubandhu)의 저서: 『아비달마구사론』은 당시 불교 철학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중요한 교과서로 쓰임.

  • 카슈미르 면적: 약 222,236 $km^2$.

  • 산스크리트어 특징: 인공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언어라는 뜻의 ‘Samskrta’에서 유래, 고전 문헌 보존에 최적화됨.


본질을 잃어버린 시대의 불안과 패륜

이 모든 행동들이 한국 불교 아니 우리나라의 정신문명에 대한 패륜이기도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나는 항상 이 사람들에게 있는 근본불안이 느껴집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없다면 공부가 아니라 세뇌를 당하는 것입니다.

원조를 강조하는 집에는 원조가 없고 민주를 부를짖는 곳에는 민주가 없고 정의를 부르짖는 곳에는 정의가 없고 미래를 말하는 곳에 미래가 없고 양심을 부르짖는 곳에는 양심이 없는 이치를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넓이 22만km2라고 하는데요.

대부분이 불모의 산악 지대이고 약간의 땅을 양의 방목 등으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카슈미르 계곡의 관개에 의해 쌀 · 밀 · 과수가 재배되고 캐시미어 직물, 사프란 등의 특산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젤룸 강 계곡의 풍광이 뛰어난 관광지 라고 합니다.

1946년 영국의 보호령이였고 1947~49년 인도 · 파키스탄 분쟁 후 49년 양국이 분할했으며 59년 인도령의 북동부를 중국이 점령했다고 합니다.

논파된 외도에 교사된(카시미르) 중현(衆賢, 산가바드라)이 논쟁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대승비불설을 제창했는데, 형 무착(아상가)에 이끌려서 대승으로 전환하고, 화엄, 열반, 법화, 반야, 유마, 승만 등의 대승경에 대한 논서나 유식사상에 관한 해설서를 만들었고 80세에 아요디야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대승성업론, 불성론, 변중변론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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