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에 대한 믿음
저는 신을 믿지만, 굳이 “신을 믿는다” 라고 표현하지 않고 인과를 믿는다 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공의로움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공의로움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모든 존재를 공평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잘 풀리거나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서, 신이 특별히 그 사람만 사랑했다거나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좋은 씨앗을 심었고, 스스로를 잘 도운 결과라고 보는 편입니다.
현재의 중요성
우리를 하나의 비유로 표현하면, 자신이라는 손님을 태운 장거리 택시 기사와도 같습니다.
- 아무리 과거에 많은 돈을 벌었어도, 또 잘나갔더라도 지금 운전을 잘못하면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 아무리 그동안 안전하게 운전해 왔더라도, 현재의 운전 실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이 현재라는 것입니다.
명상과 심화된 탐구
명상은 단순히 생활에 이로움을 주는 것을 넘어, 더 심화된 모습을 보이면 진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언제나 모든 일은 더 깊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네추럴 본 타고났다고 하기도 합니다.
선천적인 재능이 있는 경우죠.
진리에 대한 탐구의 한 예가 불가에서 말하는 멸진정입니다.
멸진정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남기고, 나머지 생체 시스템이 꺼지는 상태와 비슷합니다.
쉽게 말해 겨울잠을 자는 것과 같고, 수행의 힘으로 일종의 임사체험을 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물론 이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고,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접하기도 어렵습니다.
변성의식과 동시성
멸진정이 대문과 같다면 , 옆문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꿈이라는 변성의식 상태입니다.
이런 꿈이라는 것은 대부분 개꿈이지만 변성의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드문 의미 있는 경험을 동시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유물론을 돌파할 수 없다면 이런 수행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내가 방에서 벽을 보고 좌선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는 밖의 풍경이 보였습니다.
신기해서 밖을 나가 봤더니 정말 눈이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남에게 말할 순 없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겠죠.
물론 꿈은 이런 직설적인 현상보다 대부분 상징과 은유로 나타납니다.
기운과 수행
다른 접근 방법으로는 기운(에너지)을 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보통 추천하는 것은 영보국정정편인데 항상 이런 것을 이야기하면 원래 원전은 뭐였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영보국정정편과 비슷한 내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추천하는 것은 작성자가 직접 해보고 수정해서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원전 이러면서 꼭 위로 올라서려는 그 사람들은 안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해보면 압니다.
아주 긴 수행시간이 필요한데 이거 저거 건드리는 사람들이 하긴 뭘 하나요.
그리고 나이 먹으면 여기저기서 기운이 샙니다.
샐 기운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요.
새는 기운마저 약해지면 뚜렸한 노화 증상이 나타납니다.
저도 젊을 때는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 무엇이 정답인가 하고 엄청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순전히 힘떨어져서 힘낼려고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더 나아지진 못해도 몸이 아프진 말아야죠.
솔직히 저는 이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 간단히 말하면 우리 몸에는 일반적인 에너지 순환체계가 있습니다.
- 그리고, 많은 에너지가 모였을 때만 작동하는 또 다른 체계가 선척적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나이가 들거나 몸이 약해져 에너지 레벨이 낮아지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인 체험으로는 이 기운에 크게 의존하는 방법을 유위법, 반대로 기운에 영향을 덜 받는 방법을 무위법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결론
중요한 것은 이런 수행을 하는 사람이나 하지 않는 사람이나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우리는 신의 표현이니까요.
항상 하는 말입니다만 당신이 신의 표현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오늘 울고 웃는 모든 사람 하나하나 하루하루의 일상과 경험이 소중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물면 아픈 손가락입니다.
그래서 비교할 필요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은 당신을 통해서 세상을 보니까요.
그래서 명상의 효용을 이야기 할 때는 몸과 마음에 대한 실질적인 효용을 이야기하고 이런 깊은 곳까지는 인연이 성숙했을 때 해도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