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사상과 현대 과학 마음의 표상

유식사상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면 무착과 세친(Vasubandhu)에 의해 그 유명한 유가사지론과 소의경전인 해심밀경(Saṃdhinirmocanasūtra)을 근거로 하여 체계화되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유식사상이란 우리들이 경험하는 이 세계는 단지 마음의 표상에 지나지 않고, 외계의 사물은 마음의 표상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마음의 범위가 관찰되는 범위 혹은 이해되는 범위에 따라서 굉장히 다릅니다.

내 마음의 표상이라는 점에서는 객관세계에 대한 모순을 일으키는 부분이죠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말해보겠습니다.

인식의 한계와 의식의 포커스

간단한 예를들어 말하면 눈을 감은 사람에게 외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알아도 지각할 수 없는 경우가 있죠.

자주 드는 예로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굶주린다는 것을 알아도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또 같은 공간 같은 감각을 공유해도 의식의 포커스가 어디에 어떻게 맞춰지는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이게 됩니다.


유식과 시뮬레이션 우주론의 만남

반면에 연원을 모르고 알아차리는 공적영지나 허령지각이 되면 요즘 말하는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가깝게 됩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즉 상호작용이 없으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은 입자가 아닌 파동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식의 개념은 『해심밀경』의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의 기술에서 드러나듯이 유가행의 실천적 체험에 근거하여 성립된 것이라고 합니다.


해심밀경: 반야의 공(空)을 넘어선 궁극적 해석

해심밀경은 말 그대로 불교 교법의 심오한 뜻을 해석한 경이라는 뜻으로 『반야경』에서는 다만 5온, 12처, 18계 등의 일체의 모든 존재가 공(空)이라는 사실만을 밝혔을 뿐 그것의 궁극적인 취지를 드러내지 못하였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완전하게 밝히고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합니다.

이 반야경에서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반야심경입니다만 반야경 전체는 보기가 아주 괴로워요.

반복이 정말 많거든요. 저도 보다가 포기했으니까요.

그리고 인도라는데가 좀 우리와는 이질적인 정신세계가 있다보니까 우리 식으로 이게 뭐지? 하는게 있습니다.

굳이 이런 것까지 내가 변호를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칭 대승비불설이나 알고보니 대비주는 힌두교 신을 찬양하는 것이라던가 이렇게 불교 자체의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과 불교인이라면서 부처님 탄신일은 전혀 언급없이 지나가면서 크리스마스는 기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의 도리는 지키는 의미로 반박을 대신해주는 경우는 있습니다.


정신 문화의 완성: 유교, 기독교, 그리고 과학의 만남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을 아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우리의 정신 문화는 거의 완성 직전에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원래 모든 것이 우리 것이였다는 그런 환타지가 아니라 불교가 마음을 깊은 이치를 담았다고 해도 한편으로는 뭔가에 빌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헛된 도리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이 성리학의 나라에 오면서 한편으로는 깊은 이치를 담고 다른 한편으로는 헛된 도리를 배격하고 사람이란 무엇인가? 를 잘 정리했다고 평가해 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만나고 또 과학을 만나면서 저는 종교라는 것이 전에 없이 앞뒤가 맞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정리 되지 않았고 제가 일대종사의 수준에 다다르지 않는 이상 나설 일은 없겠죠.

좀 엉뚱하게 기독교 이야기를 하면 예전에는 전쟁을 할 때 깃발을 들고 전쟁을 해서 이기면 그 해당부족의 신이 센거였어요.

이때의 신과 인간이 성장해서 근원적인 신 즉 제일원인을 깨달았을 때 이 연결되지 않는 두 신을 억지로 연결했다 라고 추측하지요.

그래서 이런 부분은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이건 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의 법: 비밀 없는 깨달음과 과학의 조화

또 누군가가 자신의 빽이 신이고 또 어느 사람은 부처님이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의 빽에 신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것을 깨닫는 방법을 알 수 있고 더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더이상 비밀이 아니게 될 것이고 그 방법은 과학과 전혀 부딪히지 않을 것이고 나만이 이것을 깨달았다는 바보같은 소리도 못하게 되겠죠.

분명히 새로운 법은 나올 것이며 그렇다고 그 법은 옛법과 다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단지 예전에 있던 억지와 무협소설같은 환타지가 사라질 뿐이죠.


8식 알라야식과 불교심리학의 체계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학파는 승의적으로는 중관학파와 반야의 공(空)’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세속적으로는 ‘오직 식(識)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취한다고 합니다.

공은 설명이 있기는 합니다만 실은 설명이 중심일 수가 없습니다.

체득과 경험의 문제입니다.

특히 8식 알라야식(阿賴耶識)을 중심으로 마음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분석과 해명을 통해 잡염(雜染)과 청정의 두 길로 전환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해명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한참 뒤에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지관(止觀)수행의 실천을 통해 미혹(迷惑)에서 깨달음으로 전환되는 전미개오(전의)의 구조와 보살도의 실천체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이 학파의 유식사상은 7세기에 당나라의 현장이 구법 여행을 마치고 인도에서 돌아온 후, 그에 의한 『유가사지론』 등의 유식 관련 경론들에 관련한 주요 번역들과 『성유식론』 등의 저술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현장의 제자인 자은대사는 현장의 사상을 계승하여 법상종을 조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유식사상은 구사학(俱舍學)과 더불어 불교의 교의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토대와 철학적 기반을 제공함과 더불어 8식의 체계를 통한 심층적인 불교심리학(佛敎心理學, buddhist psychology)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