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수행자, 물속의 달이 되다: 북녘의 성자 ‘수월’ 선사의 일대기

1. 머슴에서 고승으로: 천진한 삶과 늦은 출가

 

한국 근세 불교의 대표적인 고승이자 경허 선사의 뛰어난 제자 중 한 분인 수월(水月) 선사(법명: 음관)는 1855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자랐지만, 그의 성품은 티 없이 맑았습니다. 수월은 모든 생명을 자기 몸처럼 아껴 모기나 빈대 같은 작은 벌레조차 함부로 죽이지 않을 정도로 천진하고 자비로웠습니다.

서른이 다 되던 1883년 늦가을, 수월은 한 탁발승에게 전해 들은 수행 이야기에 감명받아 출가를 결심합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서산 연암산 천장암으로, 당시 한국 근대 선풍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의 친형, 태허 성원 스님이 주지로 계신 곳이었습니다.

 

2. 천장암에서의 용맹정진과 특별한 인연

 

천장암에서 수월은 행자로 지내며 주로 나무꾼 일을 했습니다. 이곳은 훗날 한국 불교를 이끌게 될 세 명의 위대한 인물들이 모인 장소였습니다.

  • 만공(滿空) 선사: 수월이 천장암에 온 지 1년 뒤, 14세의 어린 동자로 찾아와 사미계를 받고 공양주로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 혜월(慧月) 선사: 훗날 ‘천진도인’으로 불린 혜월 선사도 이때 천장암에서 밭일을 하며 《수심결》을 공부했습니다.
  • 수월 선사: 이 시기 수월은 특히 《천수경》을 좋아하여 자나 깨나 지극정성으로 외웠습니다.

1887년 겨울, 물레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던 수월은 천수다라니를 외우다 돌확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든 채 발견됩니다. 태허 스님이 그를 급히 끌어내자 멈춰 있던 방앗공이가 다시 쿵쿵 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이 순전한 수행력을 인정받아, 수월은 다음날 태허 스님으로부터 법명과 사미계를 받고 정식 출가했으며, 경허 선사를 법사로 모시게 됩니다.

 

3. 빛을 발한 수행력: 방광(放光)의 체험

 

경허 스승이 일러준 대로 수월은 종일 일하면서도 죽기 살기로 천수대비주를 외웠습니다. 그해 용맹정진 이레째 밤, 그의 몸에서 **불기둥이 뿜어져 나오는 ‘방광(放光)’**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후 수월은 세 가지 특별한 힘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1. 잠이 없어짐: 다시는 잠을 자지 않게 되었습니다.
  2. 병을 고치는 힘: 앓는 사람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3. 세상의 이목을 피하다: 1896년 지리산 천은사에서도 밤새 삼매에 들었을 때 거대하고 강렬한 빛줄기가 터져 나왔고, 그 빛을 보러 아랫마을 사람들까지 몰려들었습니다. 수월은 이적에만 마음을 빼앗기는 세태를 염려하여 곧바로 지리산을 떠나 보임공부에 몰두했습니다.

 

4.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그리고 간도의 보살행

 

1910년경, 수월은 스승인 경허 선사의 행방을 애타게 찾아 북한 지역을 떠돌았습니다. 결국 갑산군 도하리에서 ‘박난주’라는 이름으로 훈장 노릇을 하던 경허 스승을 찾았지만, 스승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라며 끝내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수월은 정성껏 삼은 짚신 몇 켤레를 문 앞에 올리고 절을 한 뒤 돌아섰다는 일화는 제자의 간절함과 스승의 준엄함을 보여줍니다.

1912년 경허 선사가 열반에 들자, 수월은 두만강을 넘어 **간도(間島)**로 향했습니다.

  • 무주상보시의 실천: 백두산 기슭의 도문시 회막동에서 일반인의 모습으로 소를 치며 품삯을 받았습니다. 그는 밤새 짚신을 삼고, 낮에는 큰 솥에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간도로 건너오는 동포들을 위해 **길가 바위에 주먹밥을 쌓아 놓고 나뭇가지에 짚신을 매달아 놓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묵묵히 실천했습니다.
  • 말없는 가르침: 1921년 왕청현 나자구의 화엄사에서 여생을 보낼 때도 누더기를 걸치고 종일 일했으며,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밥을 날라주었습니다. 금오, 효봉, 청담 등 훗날 한국 불교를 이끈 수많은 스님들이 그의 말 없는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화엄사를 찾아왔습니다.

 

5. 물속의 달처럼 사라지다

 

1928년 음력 7월 16일, 하안거를 마친 다음날, 수월 선사는 절 뒤편 개울물에 깨끗이 몸을 씻고, 바지저고리와 새 짚신 한 켤레를 머리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채 맨몸으로 단정히 결가부좌한 자세로 입적했습니다. 세수 74세, 법랍 45세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7일 동안 밤마다 송림산에 불기둥이 치솟는 대방광이 일어났고, 산짐승과 날짐승이 떼를 지어 울었다고 합니다.

 

6. 경허의 세 달: 수월, 혜월, 만공

 

수월 선사는 호방한 선풍의 만공(보름달), 아이 같은 천진불의 **혜월(하현달)**과 더불어 스승 경허의 뛰어난 세 제자, 즉 **’경허의 세 달’**로 불립니다.

수월 선사는 평생 글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까막눈 선사”였지만, 일상의 고된 노동을 철저한 수행 방편으로 삼아 무수한 이적을 나툰 전설적인 대선지식이었습니다. 특히 간도에서 보여준 무주상보시의 자비행은 그를 이름처럼 **’물속의 달’**처럼 흔적 없는 삶을 살다 간 숨은 성자로 기억하게 합니다. 현재 수덕사 금선대에는 경허, 수월, 혜월, 만공 선사의 진영이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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