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자진언(옴마니반메훔)의 본질과 역사적 평가
육자진언이 ‘육자대명왕진언’이라 불리는 이유
옴마니반메훔은 육자신주, 육자대명왕진주라고도 불리며, 관세음보살의 미묘본심을 드러내는 진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 용성스님은 “모든 주문은 각자 최고다”라고 하셨지만, 동시에 본인이 보기에 육자진언이 최고라고 평가한 기록도 있습니다.
1980년대 소설 『단』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봉우 권태훈 선생 또한 용성스님을 “너무 도통해서 괴물 같은 분”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인물들의 평가만 보아도 육자진언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인산 김일훈 선생과 대비주·육자진언의 득력
직접적인 평은 없지만, 인산 김일훈 선생이 신묘장구대다라니(대비주)를 외워 혜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육자진언 역시 분명히 어떤 힘을 갖고 있다는 추측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대비주와 육자진언의 관계
대비주 → 육자신주 라는 속설의 한계
“원래 길면 대비주, 대비주를 줄이면 육자신주”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사실 원리상의 근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세음보살을 대표하는 긴 다라니에 대비주, 짧은 진언은 육자진언인 셈이죠.
인산 선생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10만독 하셨고,
“직접 생이지지로 내가 가진 혜보다 더 나은 것을 얻지 못했지만 득력은 있다”라고 평가한 것은 유명한 내용입니다.
‘관정·수기’가 있어야 효과가 난다는 주장에 대한 의문
어떤 이들은 “관정이나 수기를 받아야 효과가 난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에 대해선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화엄성중이 실재한다면 **심고(마음에 새김)**만으로도 충분할 것
기운이 응축되어 있다면 멀리서도 신명이 알아볼 수 있을 것
그럼에도 굳이 “산 사람이 머리에 수기를 해야 한다”는 이유는 역사적으로도 그 근거가 명확히 제시된 적 없음
따라서 수기 의존 논리는 수행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는 의문이 자연스럽습니다.
수행자들의 실제 경험과 증언
우룡스님·정공스님 사례
우룡스님은 젊어서 육자진언 수행으로 득력을 얻었지만,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일어나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극락사 조실 정공스님은
“요즘엔 낙엽 하나에도 중음신이 붙어 있다.
그런데 육자진언을 외우면 몸에 중음신이 붙지 못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삼매를 얻었음에도
오히려 육자진언을 추천하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경허스님 제자 수월스님의 기록
경허스님의 세 제자 중 북녘의 상현달인 수월스님에게 전해 내려오는 글에 보면,
“대비주를 못하면 옴마니반메훔을 해서라도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된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수행하며 얻은 변화
흉몽 소멸과 마음의 부드러움
여기까지는 남들의 이야기고, 제가 직접 육자진언을 수행한 경험을 공유합니다.
저는 육자진언을 했을 때 나무아미타불과 동일하게 흉몽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음이 순해지고 부드러워졌으며, 세상에 대한 끈적한 적응력이 생겼습니다.
마치 씨름이나 태극권의 원리처럼
상대가 밀면 그 힘을 이용해 끌어오고
상대가 당기면 그 힘을 이용해 미는
그런 자연스러운 힘의 전환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때 저는 이런 마음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인욕(忍辱)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알고 보면 진언의 기본이 옴아훔 즉 3이라고 했을 때 옴아훔의 확장판이 6에 해당하는 옴마니반메훔이라고
할 수 있고 머리 가슴 아랫배를 모두 진동시키지만 그 중 대표되는 것은 태양에 해당하는 목을 포함한 가슴이 되죠.
참고로 9에 해당하는 것은 준제주로 추측합니다.
증장의 기준과 대승장엄보왕경의 의미
증장이란 결국 기존의 ‘나’와의 비교입니다.
대승장엄보왕경에서 “뱃속의 벌레까지 해탈을 얻는다”는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의식구조의 깊은 원인을 가리킨 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해탈’이란 단순히
“남이 없음 → 무생”
이라는 것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그 사이에 빠져 있는 설명해야 할 구조가 훨씬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니(보주)와 파드메(연꽃)의 실제 상징 구조
마니(보주)의 의미: 8식과 대원경지
옴마니반메훔에서 ‘마니’는 보주(寶珠)를 말합니다.
즉 8식(아뢰야식)과 대원경지의 상징이며,
이것이 확장되면 곧 ‘지혜’가 됩니다.
이미지를 떠올리려면 용의 여의주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이미지는 신성을 머금은 비누방울 같은 것이겠죠.
파드메(연꽃)의 의미: 자비·평등성지
‘파드메’는 연꽃이며, 이는 자비—즉 사랑의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연꽃은 7식과 평등성지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회광반조(인식을 근원으로 되돌림)를 하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하나였던 시각’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미 나뉜 존재들은 나뉜 상태를 존중해야 하므로
그 간극에서 **슬픔(비)**이 생깁니다.
그래서 보살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비원(悲願)—슬픈 소망의 성격
을 갖게 되는 것이며, 이는 문학적 미사가 아니라 실제 구조적 감정입니다.
왜 ‘마니 파드메’이지 ‘파드메 마니’가 아닌가
선후 구조
보주(마니) = 더 근원적인 의식(8식·대원경지)
연꽃(파드메) = 8식과 겹쳐진 교집합을 가지고 있는 7식의 근원
따라서 마니→ 파드메
이 순서가 맞기 때문에 ‘옴 마니 파드메 훔’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지혜, 왼손이 사랑이지만
둘은 한 몸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저처럼 왼손잡이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