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명도의 유래와 정완(訂頑)의 의미
두번째 서명도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서명도는 북송때의 사람인 장횡거가 쓴 서명을 보고 원나라 때 사람인 정복심이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서명은 원래 제목이 정완 이었다고 합니다.
즉 어리석음을 바로잡다. 또 완고함을 바로 잡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서명도는 상도와 하도에 두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일분수와 천지부모의 논리
상도는 이일분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하도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처럼 천지를 섬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모든 백성이 나의 동포요. 만물이 나와 더불어 같은 존재다 라는 것으로 인이 과연 어떤 마음인가를 설명했고 인이 다시 천지의 본성이라고 말했습니다.
2. 수행의 표준: ‘오직 모를 뿐’과 무지의 구름
그리고 이건 이런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표준이 될 만한 방법이 바로 오직 모를 뿐 이란 숭산선사의 법이며 무지의 구름으로 들어가는 카톨릭의 진수이자 아파테이아니 아타락시아니 하는 서양 철학의 가르침 중에서도 판단중지에서 나오는 마음의 상태로 이런 철학의 힘을 통해서 로마 오현제같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그런 힘이기도 합니다.
사실 몰입에 들어가서 깨어나는 법은 세계에 존재하는 요리의 수 만큼 다양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맛이 있는 부분이 있고 또 다른 맛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도 백천삼매란 말로 그 다양성을 일찍이 표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지의 구름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러가지 수많은 방법 중에서도 표준이 될만한 법 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르면 이게 비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보통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교양에 더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 이상과 현실의 간극: 생명의 본래 마음
읽어보면 막 그렇게 근사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퇴계 이황 자신도 그렇게 못살았고요. 그렇게 사는 사람은 며칠을 살 수 없어요.
왜냐하면 세상에는 억울한 사람도 많고 불쌍한 사람도 많고 어려운 사람도 많습니다.
이를 나와 완벽하게 동일시 할 경우에 나라는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존속할 수가 없어져요.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은 그런 봄이 보여주는 생명의 피어남과 같은 그런 마음이 본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우리는 그 마음과 접속할 수 있구요. 또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불가의 용어로 말하면 선입니다. 영어로는 젠이라고 하죠.
4. 고대 세계관의 비판적 수용
서명도는 주된 주제가 이일분수인데 퇴계가 보는 세상과 사람과 사람들의 세상에 관한 생각이죠.
이것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에서도 보여지는게 있는데 당시의 세상은 지금 보면 “아 이게 뭐지?” 라고 할 만큼 좀 의아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고대의 세계관에 대해서 이 사람들이 당시 했던 생각들은 확실히 흥미로운 부분이긴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도 몇십년 전에는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한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일은 언제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5. 성인(聖人)의 학문과 인(仁)의 확인
서명도에 두 문장만 인용하면 이것도 할 말은 다한 건데요.
인용해보면 대개 성인의 학문은 인을 찾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또 인용하면 이 인이 충만하여 가득 채웠을 때 성인이 된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런 마음은 특히 몰입을 통해서 가질 수 있구요.
모릅니다 라는 그런 명상법이나 또는 다른 수행방법을 하셔도 도착하게 되는 마음입니다.
이 인의 마음, 봄의 따스함과 같은 마음이 자신의 마음임을 확인하고 늘 이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을 기준으로 하면 학문을 한다 수양을 쌓는다 수행을 한다는 모두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6. 보편적 이치와 사회적 합리성
마지막으로 인간과 만물이 천지에서 나왔기에 천지를 부모로 여기는 것 즉 이일 이치가 하나다 라는 것은 성학의 위대한 보편성 입니다.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병폐와 폐단이 있습니다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또 놀라운 장점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이런 성학이 주는 합리적인 생각의 전통에 있다는 것을 역시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샤머니즘 불교 유학 기독교 과학의 복합적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7. 분수(分殊)의 개별성과 명실상부(名實相符)
다음으로 세상의 학문은 이런 분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그러니까 어떻게 다르냐? 라는 부분이죠. 여기에는 각자가 각자대로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이 분수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이야기 해 줄 사람이 세상의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명실상부라는 말을 두 번째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석가도 예수도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퇴계도 율곡도 분수에 있어서는 각자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저는 그래서 여러분도 여러분 각자의 분수의 이야기가 당연히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해야 합니다.
보통 하나의 논증에서 전제가 참이 아니면 그러니까 잘못된 사실로 부터 출발한 지식은 틀린 겁니다.
또 전제와 결론이 충분한 개연성이 없으면 그러니까 잘못된 사고를 하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요즘은 다르다를 강조하면서 틀린 것마저 다르다고 우격다짐을 늘어놓는 일이 많아졌는데요.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다 말하지는 못하지만 뭔가 답답해지고는 하죠.
이것으로 서명도에 대한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용어 해설: 정완(訂頑) – 북송의 철학자 장재(장횡거)가 서명의 원래 제목을 ‘어리석고 완고함을 바로잡는다’는 뜻의 ‘정완’으로 붙였으나, 정이가 글의 위치를 보고 ‘서쪽 벽의 글’이라는 뜻의 ‘서명’으로 고칠 것을 제안함.
이일분수(理一分殊) – 만물에 내재된 이치는 하나이나(이일), 그것이 개별 사물로 나타날 때는 제각기 다른 모습과 분수(분수)를 가진다는 신유학의 핵심 이론.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 – 14세기 영국 수사 미상의 저서로, 신과의 합일을 위해 지성을 내려놓고 ‘모름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관상 기도를 의미. 본문 중 ‘오직 모를 뿐’과 일맥상통함.
판단중지(Epoché) – 그리스 회의주의 및 현상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대상에 대한 선입견이나 판단을 유보하여 순수한 의식의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
로마 오현제와 스토아 철학 – 본문에서 언급된 ‘아파테이아(Apatheia)’는 스토아 학파의 이상적 상태로,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을 뜻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대표적인 인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