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유튜브에서 고양이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쉽습니다.
솔직히 고양이만이 아니죠.
이 제목올 보면 당연히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냥 지나가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글을 남기는 이유는 제 자랑을 하고 싶어서 입니다.
저도 정말 고양이를 좋아하거든요. 개와 고양이 중에 항상 고양이가 더 좋다고 말하는 부류입니다.
저도 반려고양이를 키우면서 고양이 영상을 올려보고 싶지만 지금 제가 살고 있는 환경은 고양이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인연이 성숙해지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보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무슨 자랑이 하고 싶으냐 하면 그 사태와 관련한 댓글 중에서 여러 사람들이 즐겨보다가 세~~함을 느끼고 구독을 취소했다는 말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사태가 발발했을 때 역시 나의 안목은 아직 살아있구나 하고 우쭐해졌었죠.
그 사태에 관해서 비판이나 비난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할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고 중복되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김에 좀더 이야기를 진행하면 장사가 잘되는 장르는 고양이만이 아니라 많이 있습니다.
조회수가 높고 채널의 주인공에 별도의 인지도와 재능이 필요없는 것을 고르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민감한 주제고 잘먹히지 않을 것 같으면 해외에 있는 것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해외이슈도 많이 있고 조던 패터슨을 인용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개인이 할 수 없으면 팀을 구성하는 방법도 있구요.
처음에 잘 안된다면 시행착오를 몇번 거치면 됩니다. 어디 첫술에 배부르겠습니까?
유튜브도 수익형 블로그도 답이 눈앞에 있습니다.
유튜브는 위에서 말한 것을 모방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 것을 섞으면 되고 수익형 블로그도 여러 검색어를 입력해서 최상단에 노출되는 블로그들이 이미 정답을 가지고 있는 블로그입니다.
이걸 알았다고 해서 아 난 너무 똑똑해 이러는 것은 확실히 한참 오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데이트 : 다만 블로그는 인공지능 도입 이후에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든 모습입니다 .
어딘가에서 아직도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만 제가 아는 과반 이상은 유튜브로 옮겨 가셨다고 관찰됩니다.)

매일 손상되는 선의와 ‘몰라’를 통한 마음의 회복
다만 제가 주목하는 것은 선의라는 것이 매일 손상되는 나의 마음입니다.
성학십도의 서문에서 퇴계가 말했듯이 수많은 욕심들이 서로 공격하고 모든 사악함이 번갈아가며 이 마음을 손상 시키려고 합니다.
이거는 때로는 실패가 때로는 성공이 때로는 고집이 때로는 추종이 마치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꺼리만 잔뜩 생기듯이 치워야 할 것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늘 말씀드리듯이 몰라 해서 오직 모를뿐인 마음을 통해 회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어느 종교에서 뭐라고 했든 인간에게는 욕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탐진치의 삼독 역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전환을 말합니다.
대승불교 유식학으로 풀어내는 8식의 전환과 4가지 지혜
유식학에서도 범부의 8가지 의식이 변하여 얻은 지혜로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가 있다고 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대원경지는 번뇌에 오염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전환되어 얻은 청정한 지혜 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아뢰야식에서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라고 합니다.
평등성지는 7식인 말나식인 전환되어 얻은 지혜를 말합니다. 자타 일체의 평등을 깨닫고 대자대비심을 일으키는 지혜라고 하는데 일단 7식이 나라는 아상이 자리잡은 곳을 말합니다. 작은 나에서 큰 나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분은 성학십도에서 나오는 인의 두 특징인 지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묘관찰지는 번뇌에 오염된 제6식을 질적으로 변화시켜 얻은 청정한 지혜라고 합니다. 묘(妙)는 불가사의한 힘의 자유자재를 뜻하고, 관찰은 모든 법을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지혜는 모든 현상을 잘 관찰하여 자유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편안함을 얻게 해주는 지혜입니다. 6식이 간편히 말하면 우리의 의식을 말하니 당연한 전환이겠죠. 인과를 관찰하는 힘은 여기서 옵니다.
성소작지는 번뇌에 오염된 전오식(前五識)을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라고 합니다. 이 지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을 모두 성취함이라고 하는데 그냥 맥가이버를 생각하시는게 이해가 더 빠를 것 같습니다.
하나의 결과에 또 하나의 액션에 삐뚤어진 반응은 전5식부터 아뢰야식까지 모두 상관이 있습니다.
되도록 간략히 말하고 싶어도 대승불교는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설명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 소가 물을 먹으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이 되죠. 이런 원시불교의 간편한 비유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성학십도에서 한 이야기의 다른 변주일 뿐이지 같은 이야기입니다.
21세기 새로운 표준과 참나 각성의 필요성
20세기는 유불선 혹은 삼교의 합일 혹은 유불선기 4교의 합일을 말해왔다면 21세기는 새로운 표준을 말해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전공하시는 분들이 많은 힘을 내셔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번 더 노력해서 나 스스로에게도 또 세상에게도 유익함이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의무감에 시달리는 불편함이 아니라 유쾌 상쾌 통쾌해지는 삶에서 나오고 그런 삶은 선의 생활화에서 올 수 있고 그래서 몰라를 하는 것이고 존재론적으론 참나를 각성하고 상태론적으로는 열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공학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필수교양이라고 아울러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일의 해법이 된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좌절스러울 때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글을 보셨으면 합니다. 세종대왕이 저마다의 백성이 하려는 일을 원만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든 이 글자를 보고서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
절대 허망하지 않다는 최대의 증거이자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표적인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라는 이야기로 글을 마쳐봅니다.
저는 다음에 시간을 마련해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및 서문 배경
설명: 1568년 선조에게 바친 10가지 병풍 도설로, 유학의 핵심을 요약한 대표적 성리학 문헌. 서문에서는 마음을 사악함과 욕망으로부터 지켜내는 ‘경(敬)’의 실천과 내면의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 국정 수행 및 삶의 근본임을 강조함.
유식학(唯識學)의 전식득지(轉識得智) 및 사지(四智) 해설
아뢰야식(제8식) → 대원경지(大圓鏡智): 무의식의 가장 깊은 저장소이자 업의 씨앗이 담긴 아뢰야식이 맑아져 만물을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비추는 지혜.
말나식(제7식) → 평등성지(平等性智): 나라는 착각(아상)을 만드는 자아의식이 전환되어 나와 남이 평등하다는 대자대비심의 지혜.
제6식(의식) → 묘관찰지(妙觀察智): 분별하고 의심하는 일반 의식이 질적으로 변화해 인과관계와 법을 명확히 살피는 지혜.
전오식(안·이·비·설·신) → 성소작지(成所作智): 감각기관을 통한 행동과 실행이 중생 구제와 유익한 일을 완수하는 현장형 실행 지혜로 전환됨.
원시불교의 비유: ‘소와 독사의 물’
설명: 동일한 물(마음/환경)이라도 소가 마시면 생명을 살리는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불교의 고전 비유. 외적 조건이나 지식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정화 상태(참나/선의)가 본질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줌.
유불선기(儒佛仙基) 및 21세기 신표준
설명: 조선 후기 및 20세기 한국 사상사에서 유교, 불교, 선교(도교), 기독교를 하나로 통합하여 풀이하려 했던 사상적 시도. 본문에서는 이제 종교적·학문적 경계를 넘어 현대인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참나 각성’과 ‘선의의 생활화’가 21세기의 새로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제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