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소학도 리뷰

1. 소학도의 기원과 구조: 입교, 명륜, 경신

소학도는 주자가 저술한 소학이라는 책을 퇴계가 도표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소학은 어린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주자가 편찬한 책으로 내용은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학도는 소학의 목차인 입교 명륜 경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림 전체의 흐름은 입교 명륜 경신을 설명하고 이것이 다시 계고를 통해 증명되었다가 다시 가언과 선행을 통해서 확장되는 그런 구조입니다.

이 입교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육덕인데 지 인 성 의 충 화 입니다.

이거는 당장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목표와 방향성을 먼저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육덕은 가령 성령의 9열매라 할 때 그 열매라는 단어나 6바라밀 혹은 10 바라밀에서 바라밀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입니다.

마음을 육각형이라고 가정하면 꼭지점에 해당되는 그런 것이죠.

전문성과 양심에 대하여

그러니까 사실 6바라밀선이라는게 따로 있다고 하면 이것은 다른게 아니고 틀린게 됩니다.

하나 더 말하자면 자신의 의견이 바뀔 때 그 전에 의견을 전생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세상에 그런 전문가는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전문가의 양심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주장하는 양심의 세상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구요.


2. 명륜(明倫): 오륜과 관계의 쌍방향성

명륜은 오륜을 말하는데 중요한 점은 천지, 음양, 남여처럼 쌍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 모두 쌍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관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태도가 됩니다. 우리는 종종 어린 시절의 친구가 평생간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느꼈을 때는 평생 가는 관계는 서로에게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관계입니다.

그게 안되면 부모 자식도 사실 어렵습니다.

사회화라는 강력한 무기

그래서 저는 사실 젊은 친구들이 매사에 좋은 친구 좋은 태도를 가지는 것이 흑수저 금수저를 이야기하기 전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소학 전체가 인간의 사회화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니까요. 사회에서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상하조차도 쌍으로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는 좋은 선배나 상사도 좋은 후배나 부하도 언제나 부족합니다.

결국 늘 선택에 있게 되고 어떤 소속에 일원이 되면 상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서게 되고 또 상대적으로 을이 알 수 없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렇게 시작이 되는 거죠.

남보다 더 나은 정보를 취집할 수 있다는 건 상대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현실 사회에서는 좋은 태도 올바른 사회화 모두 언제나 무기가 됩니다.

이것은 좀 잊지 마셨으면 하구요.

가짜 전문가를 가려내는 법

가끔 이렇게 유튜브를 보다 보면 어린 사람이 박사학위 하나 있다고 젊은 친구들 모아놓고 독한 소리를 마구 늘어놓는 걸 보게 되는데 저런 이야기를 왜 끝까지 듣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많아요

그냥 됐다 라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유튜브 싫어요 같은 것도 잊지 말고 눌러주시구요.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권리가 없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뭐 얼마나 안다고요.

박사 학위 존중은 합니다만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요.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받는 것이지 모든 분야를 커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결국 이분들은 뽀록이 났고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는 모릅니다. 정체를 숨기고 뭘 하던지 아니면 딴 일하겠죠.


3. 원형이정(元亨利貞)과 오상의 재해석

다음으로는 원형이정 입니다.  저는 책과는 조금 다르게 말을 하는데 봄에 만물이 소생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런데 여름에 성장한다는 것 만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되죠.

만물이 이게 나다 라고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여름에 대응하는 것은 오상의 예와 같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성숙한다고 하지만 가을이 성숙함만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쭉정이와 알곡이 갈리는 선택의 시기이고 그래서 오상의 의에 대응합니다.

그래서 표현은 올바른 표현이란 단어의 제약이 붙게 되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단어 선택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불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와 불이라는 단어를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같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겨울은 완성하는 것을 정이라고 하는데 사실 굳고 곧아지는 것을 말하죠.

생각이라면 수렴되어 질 것이고 모든 일과 사건의 결과로 변하는것 변하지 않는 것이 가려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알게 되니까 오상의 지에 대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마리인가 싹인가: 단(端)에 대한 단상

사단에 대해서 말하자면 네이버 옥편으로 단 자를 찾으면 실마리 단이라고 나오는데 굳이 이 실마리 단 이란 말은 틀리고 싹 단 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사단이 네 가지 단서란 이야기인데 싹 이라면 문맥이 올바르게 되고 실마리라는 의미로는 문맥이 안 된다 즉 개연성이 부족해진다 라는 말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실마리 단이라고 했을 때 사실관계가 틀린다는 뜻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엉뚱한 생각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이게 아니고 그냥 틀린 겁니다.

생각이 틀린 거에요.  같다와 다르다 이런 표현으로 사용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말과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에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양명학의 양지를 양심으로 치환하여 말하면 다른 게 아니라 틀린거죠.

일반적으로 양심은 우리 안에 있는 선량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마구잡이로 말하는 것은 그 학문을 하셨던 분들의 대한 그리고 그런 학문을 이어 오셨던 분들에 대한 존중을 잃은 것이고 그래서 사실 좋은 태도라고도 할 수도 없고 양심적인 일이라고는 더욱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4. 고전 읽기의 태도와 깨어있음

본문을 인용해 보면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 군주에게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한 것을 타고난 본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순리에 따라 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나오는데 사실 본문의 번역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어버이를 사랑하고까지는 동의해도 나머지는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런게 한 시대의 이야기지 타고난 본성이라고 할 수가 없죠. 고전을 읽을 때에는 항상 이런 것을 감안해서 읽어야 합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은 진리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사실 그런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계가 있다고 의의까지 저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게 바로 공부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배우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이런 사람을 비로소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경(敬): 성학의 시작이자 끝

다음으로 인용 할 이야기는 역시 중요한 이야기가 되는데요

내가 듣건대 경 이라는 한 글자는 성학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한다.

또 이런 것이 소학의 사회화도 이 경이 기초가 되는 것이고  대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이 경을 기초로 합니다.

대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총명함을 개발하여 덕으로 나아가 학업을 닦아서 명덕과 신민의 공을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 방식으로는 대학은 성인 그러니까 만랩의 공부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한 달에 한 번 삼천 배를 하는 어린 학생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깨어있음을 지속하고 그 출력을 높이는 대표적인 한 방법입니다.


5.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와 중도

그러고 보니 이 성학십도를 만든 퇴계는 어떤 경지에 있던 사람일까요?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데요.

서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일상 생활 속에서 지킨다면 중용과 조화 그리고 만물이 제자리에서 잘 길러지는 공덕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며 덕행이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주와 인간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의 경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이 천인합일은 사실 무협지에서 나올법한 말인데  이게 지금 왕에게 올리는 상소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천인합일은 전혀 허세가 아닌 것이죠.

그러면 최종적인 경지로서의 천인합일을 말한 것일까요?  아니면 이 천일합일 정도는 껌이다. 뭐 이런 뜻이 였을까요?

여기서 이 정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뜻입니다.

응당 이 정도는 해야 된다. 그래야 비로소 상소에 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최종적인 경지라면 천인합일을 언급한 퇴계가 바로 성인이란 의미인데 이러면 오만이 되어서 반대파에서 용납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한 경지입니다.

저같은 경우엔 이 경 깨어있음도 옛날에는 단전호흡이나 선도수련같은 것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라고 알고 생각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경은 깨어있음 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공경하다 라는 말이기도 하고 성을 지극함 경을 꾸준함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형상에서 예를 들면 코끼리를 다른 면을 각각 그린 모습같은 설명이 많은 것 같습니다.


6. 소학과 대학: 하나이면서 둘인 관계

다음으로 소학과 대학은 서로 의존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른바 하나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당연한 것입니다.

일단 사회화가 되고 그리고 자기계발을 통해서 다시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그 표현이 사회의 순기능으로 다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여담이지만 왜 공자님은 인과 예를 주장했다고 교과서에서 전해질까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인은 우리 마음의 본 바탕이고 예는 우리의 삶에 표현인데 이것이 우리 본성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신을 상정하고 있게 됩니다.

그런데 또 묘한게 불가에서는 무명이라는 것에 의해 즉 열두연기에 의해 생로병사 즉 개체성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 무명은 마야라고 해서 불성에 하나의 막을 씌워서 우리의 객체성을 이렇게 획득한다고 그렇게 적혀진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체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숨을 쉴 때는 사실 소리가 없죠.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성대라는 막을 통해 숨이 나가면 소리가 생기고 그 소리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표현합니다.

제가 이렇게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요.  이 가정은 우리가 개체성을 얻는 그런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불가에서 말하는 무명은 우리에게 주어진 제약 만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양쪽 모두의 모습이 분명히 있다고 알아야지 한 쪽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올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는 것이 중도 입니다 라기 보다는 중도에 가깝습니다.

불가의 팔정도의 정자나 이 중도에 중자는 표준을 말하기도 하지만 방향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닌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성학이라는 종교는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공부들이 많은데 사실 삶 전체에 연속성을 상정할 때에 생만을 이야기하는게 옳은지 생의 이전과 이후를 말하는 게 옳은지 사실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현재의 생 뿐이니까요.

생이란 범위를 상정하고 나면 일종의 물고기를 잡는 법에 대한  이야기하고 같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물고기를 잡어서 자신의 어망을 채우는 것은 자신들이고 따라서 자신만의 기준과 내용이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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