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제8도 심학도 리뷰

안녕하세요. 성학십도의 여덟 번째 그림인 ‘심학도(心學圖)’의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흔히 유학에서는 갓난아기의 마음을 사람의 욕심에 물들지 않은 ‘양심’이라 부르고, 인심(人心)은 그 욕심에 눈이 뜨인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양심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보편적 의미의 양심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실 갓난아기의 마음이라고 해서 욕심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울고, 먹고, 배설하며 생존 본능에 철저히 충실한데 욕심이 없다는 말은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본마음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1. 심학도란 무엇인가: 마음에 관한 성현들의 명언집

심학도는 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인 정복심이라는 분이 글과 그림을 모두 만든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글들은 성현들이 마음에 대하여 말한 명언들을 정복심이 모아서 적은 것입니다.

이 그림과 글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대인의 마음: 의리(義理)가 모두 갖춰진 본래의 마음입니다.

  • 도심(道心): 그 의리를 깨달은 마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마음이 따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결국 욕심이 있는 마음이든 무엇이든, 지금 움직이는 바로 이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절대로 딴 데서 출발할 수가 없습니다.

유학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마음은 선한 마음이므로 이것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선한 마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욕심에 물들어 악한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경(敬)’으로써 몸과 마음을 잘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2.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길: “몰라”와 참나 접속

우리는 흔히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 그때 그 마음을 다 기억하는 사람은 일단 없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벌써 잃어버린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방식으로는 본마음을 찾기 힘듭니다.

우리 본마음은 오온(五蘊)을 내려놓는 만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몰라’ 하고 무지의 구름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깨어있게 되고, 이게 바로 참나와 접속한 상태입니다.”

굳이 한 가지를 부연하자면, 사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생과 사, 그 이전이나 그 이후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공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늘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이 우주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3. 개인적 여정: 15세부터 시작된 공부와 ‘오직 모를 뿐’의 체득

저 같은 경우는 언제 이 ‘몰라’를 알게 되었냐면, 원래 숭산선사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 설법을 들어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홍익학당의 윤홍식 선생님 유튜브를 보고 비로소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한 2008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이 뜻이구나!” 하고 무릎을 치며 깨달은 이후로 많은 정신적 발전이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 15살 때부터 이런 쪽으로 깊이 공부를 해왔는데, 나중에 문득 “팔정도가 원래 이렇게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구나” 하고 어떤 깨달음 비슷한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오직 모를 뿐”이란 의미를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들어서 아는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스스로 연습하고 부딪치며 몸소 체득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사실 제 자신도 그동안 결코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정신적으로 꽤 어려운 시기가 있었는데, 마음공부를 통해 ‘다른 원인’을 갖게 되니, 삶에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시크릿(Secret)처럼 “와! 이렇게 생각하면 돈이 많이 생겨요!” 같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면의 원인을 바꾸어 삶의 궤도를 바꾼 본질적인 변화였습니다.


4. 허령(虛靈)과 참혹한 암흑 속에서 탄생한 ‘인(仁)’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심학도에서는 ‘허령(虛靈)’이란 말을 이렇게 풀고 있습니다.

“마음이란 텅 비어 있으면서도 신령스러운 존재다.”

  • 허(虛): 텅 비어 있다는 말은 아무것도 없는데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연원을 모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 령(靈): 이렇게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령하다’는 말을 쓴 것입니다. 명백히 알면 아는 이야기를 쓰지, 결코 신령하다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면 겸손하기가 참 힘듭니다.

어느 대목에서 나를 낮추고 겸손해져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글은 다시 양심과 성선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 사상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은 기본적으로 공자가 살았던, 그리고 맹자로 이어지는 참혹한 전국시대(춘추전국시대)입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인간이 인간을 먹던 끔찍한 시절이 배경이 됩니다.

눈을 뜨면 보이는 거라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일들뿐이었기에, 당시 성현들은 절박하게 묻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깊은 회의감을 느낄 때, 즉 가장 어두운 암흑 속에 있을 때 등장하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공문의 제자들은 가장 먼저 ‘인(仁)’을 찾았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인’은 그저 사단(四端)으로 분화된 후의 도덕적 조목이 아니라 신성, 불성, 그리고 참나 그 자체인 것입니다.


5. 택선고집(擇善固執)과 현대 세뇌(마인드컨트롤)에 대한 성찰

그 다음으로 나오는 개념은 ‘택선고집(擇善固執)’, 즉 선을 택하여 굳게 지킨다는 말입니다.

왜 물러서지 않고 굳게 지킬까요?

물러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지 나쁜 것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음)을 거꾸로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스스로 승복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선이기에 굳게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악마 숭배’ 같은 현상들입니다.

아무리 잔인한 전쟁광 같은 사람이라도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을 찾으려고 애쓰는데, 대놓고 악마를 숭배한다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것은 음모론과도 관계가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 저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악마 숭배가 원래는 없었다고 봅니다.

없었던 이 현상이 굳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현대의 ‘마인드컨트롤(정신 지배)’과 깊은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냉전 시대 이전의 역사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악마 숭배를 찾기가 어렵지 않나 추측해 봅니다.

누군가를 세뇌하는 과정에서는 ‘정신분열’과 ‘죄의식’ 같은 단어가 핵심 키워드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래 면목이 왜곡되어 나타난 현대의 기괴한 단면인 셈입니다.


결론: 내 마음을 키우고 굳세게 만드는 법

심학도에 대한 리뷰는 이 정도에서 마쳐도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심학도와 마음공부에 대한 저의 사견을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매 순간 ‘몰라’를 통해 자꾸 참나와 접속하시고,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고 그 깨어있는 힘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안에서부터 점점 커지고 굳세어져서, 전에는 내 능력으로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마침내 해낼 수 있게 됩니다. 마음공부의 핵심은 이토록 명확하고 간단합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꼭 시간을 만들어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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