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의 아홉째 경제잠도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책의 소개글에는 순간이라도 틈이 생기면 개인적인 욕심이 모두 일어나 불을 피우지 않아도 더워지고 얼음이 없어도 차가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고 털끝만큼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바뀌고 인륜이 어지럽게 되며 구법 또한 못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술먹고 인사불성이 되어서 실수하는 때를 생각하면 쉽죠.
때로는 여성에게 추행을 하거나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서 다치거나 죽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게 다 한 순간의 틈이 만들어지고 그 틈으로 인해서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들이죠.
반대로 이렇게 공부를 할 때는 예리하게 가다듬어서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삶의 굴레에 찌르고 들어가서 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는 지계에 모습을 보이고 또 때로는 정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경제잠도의 유래와 경(敬)의 실천
경제잠도의 소개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경제잠도는 주자가 쓴 경제잠이라는 글에 왕백이 그림을 그린 것인데 주자는 이 글을 자신의 서재에 걸어놓고 항상 경계했다고 합니다.
경제잠도는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경의 세부 항목을 열거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눈의 모습을 존엄하게 하고 손과 발의 모습을 신중하게 하라는 등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겪게 될 많은 일과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모든 것들은 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일 때나 고요하게 있을 때나 항상 경을 간직해야 합니다.
만약 경을 잃게 되면 욕심이 생겨서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경제잠도는 제 10도 숙흥야매잠도와 서로 안과 밖을 이루는 것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공부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근데 여기서 이제 눈에 모습을 존엄하게 해야 하고 뭐 의관을 바르게 해야 하고 이렇게 나오잖아요.
근데 좀 다르게 설명하면 자신이 가진 능력과는 별도로 주의가 산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발끝의 선과 어깨의 선 턱선 시선 등이 진행 방향과 일치하지 않고 이게 다 따로 놀거든요.
근데 이러면 고요하고 침착한 행동이 나오기가 힘들어 집니다. 이러면 좀 깊이 있는 것들은 행동과 말 이런 것들이 좀 어려워지죠.
신체 최적화와 마음의 일관된 맥락
그래서 사람이 각자의 역량을 다르지만 그 역량의 최적화가 결국에는 깨어있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없는 능력을 갑자기 만들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적화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다음으로 이 심자의 글자의 왼쪽과 오른쪽에 주일무적 마음을 하나로 정하여 다른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데요.
불가에서는 사마타라고도 하고 지관할 때 그 지가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보고 자신 안의 원리를 찾으면 용어에 관계없이 일관된 맥락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반면에 책과 글에 집착하면 모두가 별개의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좀 주의를 해야 합니다.
또 유간 유차 라는 말이 나오는데 순간이라도 틈이 생기거나 조금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간단히 말하면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때에는 이 이야기가 잘 적용이 되는 이야기 입니다.
근데 아까도 나온 이야기지만 공부를 할 때는 요것도 반만 이야기 한 것입니다.
나머지 반은 예를 들어서 몰라 해서 이제 무지의 구름으로 들어가서 잘 깨어나고 그 힘으로 관성화 된 삶의 틈을 만들어 냅니다.
일방적으로 끌려 가던 삶의 틈을 만들어 내서 이제 자신의 자각하는 힘을 높이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높이는 거죠.
‘몰라’를 통한 리셋과 선순환의 반응
이렇게 그 틈이 만들어지면 마음도 몸도 제로 베이스에서 생각할 수 있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실례를 들면 내가 억지로 뭐 참고 있었던 일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면 모른다 를 했을 때에는 리셋이 되면서 오히려 화를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 반대로 화를 터트리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데 그러고 나면 되려 과민했던 반응이 시간에 따라서 사라지고 그 상황에 담담해 지고 무엇보다도 머리통을 떠도는 이상한 생각들이 있죠?
‘제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한거야. 뭐 제가 저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할 거야.’ 이런 식의 머리를 계속 괴롭히는 생각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본능을 담당하는 부분이 끊임없이 떠올리는 어떤 방어기제 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것 일 수도 있는데 이런 것들인데 상황에 맞지 않는 생각들이 점차적으로 이제 잦아들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다음 단계는 이제 우리가 갖는 전에 가지고 있었던 반응 그런거에서 좀 벗어나서 일상의 루틴에 대한 생각과 반응이 최적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뭐든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고 또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나아지는 자신조금 더 담담해져가는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그것들이 선순환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죠.
경제잠도는 언제 어느 때라도 항상 경을 간직하라는 말이 중심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 이걸 무조건적으로 공경하다 는 식으로 풀면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구습에 사로잡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죠.
물론 이것이 예의가 없어도 좋다 이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서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경은 깨어있음이고 깨어서 또 집중과 관찰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여러분이 예를 들면 영드 셜록의 주인공이 잠깐 잠깐 식이라도 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여러분이 성공을 고민하면서 살지는 않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공부들이 전체가 성학이라고 봤을 때 성학은 이제 교육을 통해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인이 따로 있어서 우리가 거기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죠.
우리 자신에게 있는 삶의 결을 잘 풀어내서 결과적으로 우리 삶이 더 나아지고 자신이 더 나아지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경제잠 10장의 구조와 내면의 명랑성
경제잠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4구로 되어 있습니다.
1장은 고요하게 있을 때에도 어그러짐이 없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이제 몰라 하고 조용히 있을 수 있으면 됩니다.
2장은 움직일 때에도 어그러짐이 없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깨어 있으면 우리의 행동도 깨어 있게 되죠.
다만 고요히 자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없으면 우리의 행동도 점점 어두워져 만 갑니다.
그래서 항상 잘 깨어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죠. 또 표준이 되는 법이니까 몰라 라고 한 것이지 우리가 알만한 수행 방법은 사실 모두 같습니다.
어떤 분은 매일 2시간 반에 걸쳐서 대비주를 108독을 해도 마음이 어둡고 행동도 절도에 맞게 나오지 않는다고 좌절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일단 욕망을 누를 정도의 몰입이 안 나오니까 그런거구요. 둘째로는 가르치는 사람이 없거나 잘못 가르쳐서 그런겁니다.
일단 어떤 수행을 하던 마음이 명랑해 질 때까지는 비행기로 치면 활주로를 달리고 있는 것이지 날고 있는게 아닙니다.
이래서 이런 것을 좀 알아야 되구요. 우리의 본성은 우리가 공부를 올바르게 했을 때 반드시 이런 명랑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노래로 치면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같은건데 박칼린 선생님이 신한은행 광고에서 부르시는 버전처럼 내면이 되는거지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끼기도 합니다. 종교적 문화적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우울해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경우에는 아는 형님 이란 프로그램에서 아이린 양과 고 종현군이 나왔을 때 그 화가 재미있어서 유료로 다운받은 적이 있는데 아는 형님과 아이린 양을 좋아해서 반복해서 보게 되는 그 회차에서 반복해서 보이는 고 종현군의 모습이 점점 더 안타까워지게 됐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스타들의 실제 생활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또 이런 공부방법을 쓰기 전에 현대 의학의 일반적인 검증과 처방이 먼저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역시 혹시.. 만약.. 이런 것을 미리 배워 본 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제 유투브의 직접적인 시작의 계기이기도 합니다.
내외의 단정함과 사물과의 조화
다음으로 3장은 이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단정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제 이 문장을 읽으면 예전에 라디오 죠.
음악도시에서 해철이 형이랑 유희열 씨가 로라장에서 여성에게 잘 먹히는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단정한 모습이 의외로 진리다 할 때 그 이야기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저도 슬슬 이제 추억을 먹고 살아야 할 나이가 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안타깝습니다. 다음으로 이제 4장은 속마음이 단정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몰라 하면 오온을 내려 놓게 되고 열반을 얻게 되죠.
선정은 열반과 같아요. 그럼 뭐가 다른가 선정은 나오면 번뇌가 다시 생겨요.
그러나 번뇌가 꺼진 상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정을 경험했는데 열반이 뭔지 모른다 그럼 선정도 경험한 적이 없는 겁니다.
그럼 살아있는 상태로 최종적인 열반이 가능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일단 우리가 경험가능한 사람이 없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본래 내재된 위대한 덕성이 점점 드러나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속마음이 단정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5장은 마음이 바로 잡혀서 일에 통달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6장은 일을 할 때에는 집중하되 마음에 근본을 두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7장은 앞의 여섯장을 모두 모아 정리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우리가 몰라 해서 잘 깨어나서 시선을 외부로 돌렸을 때는 격물치지가 되고 시선을 내부로 돌릴 때는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근데 이러면 끝인가요? 아니죠.
이런 다음에 사물과 사람을 대하면 어떻게 어우러질까? 하는 부분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되죠.
이렇게 되면 조직을 이끌고 팀을 이끌 때 다다익선 그러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라는 이야기가 비로소 성립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될지 알게 되니까요. 그래서 이제 특히 6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게 거꾸로 역전이 되기 시작하면 일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게 되는데 이게 뭐 좋지 않다는 것은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급자의 수준과 깨어있음의 전환
제 8장은 마음에 흩어지는 병폐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9장은 일을 할 때에 집중하지 못하는 병폐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이제 책의 해석과는 좀 다르게 일단 이 바닥의 공부를 할 때 이적 그러니까 신이한 일을 기대하고 왔을 때 라든가 이런 경우에는 충분한 효용을 보았음에도 그만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흡법으로 치면 일분이 훨씬 넘어서 소주천이 완성되었음에도 초능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비주 같은 경우에는 누구는 신기한 일이 생겼는데 나는 그런 일이 일도 없다고 실망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수영으로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면 수영을 하다가 이제 다리에 쥐가 나서 빠져 죽는 경우는 8장 과 9장 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공부하는 사람들은 한가지 더 알아야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예전에 해병대를 나오시고 모든 특수임무를 다 해오신 분이 말씀을 해 주신 건데 수영을 물개처럼 잘하는 사람들은 절대 물에서 빠져 죽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조류에 휩쓸려서 암초에 부딪혀 죽는 불행한 일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 바닥에서 중급자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해도 수영을 잘하는 수준이지 외부의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준은 아직 아닌 것이죠.
공부의 세계는 삶의 세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래서 달콤한 약속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더 나아가서 고 광덕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려고 하는 일이 자주 막히면 이것은 공부하는 이의 법력이 약한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신 것 처럼 더 나가면 외부의 조건도 분명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깨어있음은 오온을 내려놓음으로써 얻는 것이지 욕심을 부려서얻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이라면 욕심이 없을 수가 없죠.
그래서 원을 세우고 초점을 맞춰서 대상을 고정화하여 산란한 마음을 멈추고 몰입을 극대화하여 욕심을 깨어있음으로 전환을 시킵니다.
이렇게 하면 기복이라는 것은 깨어있음 으로 전환이 가능하기에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고 기복을 사갈시하는 것은 사실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제 10장은 전체를 한데 모아 결론지은거 라고 하니또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는것 같습니다.